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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학교 민주주의와 자치학교
공지사항
기사게재일 : 2022.11.29출처 : 무등일보조회수 : 0

2006년, 교사가 된 후 처음 들어갔던 교직원회의 시간을 난 아직 잊지 못한다. 교장, 교감 선생님과 부장 교사들의 업무 전달이 끝나고 난 후 나는 순진하게도 진지한 회의를 기대했다. 하지만 회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교직원회의 시간은 '회의'하는 시간이 아니라 '전달'하는 시간, 더 좋게 표현한다고 해도 업무 협조를 '부탁'하는 시간에 불과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2022년, 이제 교직원회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빛고을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안건중심의 교직원회의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교직원회 권역별 컨설팅에서 만났던 고등학교 교무부장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교직원회의 문화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입시 앞에서 모든 것이 멈춰 서 있던 고등학교마저도 패들렛이나 구글폼을 통해 교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었으며, 학교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교직원회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학교도 많다. 하지만 학교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교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비민주적인 학교는 드물다. 학교 민주주의는 이제 시대정신인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 시대를 견인했던 것은 빛고을 혁신학교를 비롯한 학교 현장의 치열한 헌신과 노력이었다. 하지만 헌신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와 학교자치조례와 같은 제도적인 뒷받침과 교육청의 적절한 정책적 지원이 없었다면 학교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구호에 그쳤을 것이다. 최근 우리 교육청은 빛고을 혁신학교의 정신이 지역사회에 충분히 뿌리내렸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일반 학교들에 혁신학교 못지않은 생동감을 부여하고자 자치학교라는 새로운 학교 모델을 제시하면서 광주형 미래학교의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광주형 미래학교 운영설명회에 의하면, 광주교육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담은 세 가지 학교 모델은 자치학교, 혁신학교, 연구학교이다. 광주형 미래학교에 대한 발표는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광주교육의 혁신적 청사진을 기다려왔던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미래학교의 상을 세 가지로 제시하여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반영했다는 점과 기존의 혁신학교를 미래학교 모델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그 동안 학교 현장에서 힘들게 일궈왔던 학교자치와 관련된 구체적인 학교모델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만 하다. 하지만 자치학교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자치학교는 '학교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모델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학교'로 정의되며, '교육공동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시교육청이 제시한 8가지 주제(실력향상, 미래교육, 기후환경·생태, 교육복지, 세계시민, 다문화, 문화예술체육, 지역사회연계)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운영된다고 한다. 자치학교의 운영주제를 살펴보면 모두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지향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잘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실력향상'이라는 운영주제를 신청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수 학생들의 참여보다는 성적이 좋은 소수의 학생들만 참여하는 형태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 밖에도 교육복지, 다문화, 문화예술체육 등의 주제도 해당 주제가 갖고 있는 특수성으로 인해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어렵거나 관심 있는 소수에 의해 학교 운영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잘못하면, 자치학교는 자치라는 이념은 상실한 채 특색사업학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자치학교가 특색사업학교로 전락하게 된다면, 자치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는 광주교육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자치학교의 목표는 특정한 주제의 사업을 민주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학교를 만드는 것 자체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학교 민주주의는 제도와 정책, 학교현장의 헌신에 힘입어 더디지만 천천히 진화되어 왔다. 이번 자치학교의 발표가 이러한 진화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에 따르면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의 양성인 것처럼 자치학교의 목적도 민주학교를 만드는 것이어야만 한다. 민주학교와 다른 주제가 자치학교의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치학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김치원 (운남고 교사)